[이재봉] 미국의 호전성과 한미동맹의 위험성 그리고 한국 중립화의 필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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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4-07-25 09:01 조회136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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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봉 / 원광대학교 정치외교학·평화학 명예교수, 한국중립화추진시민연대 상임공동대표
1. 미국의 호전성: “세계 역사상 가장 호전적 국가”
1980년대 중반 미국에서 공부할 때 멕시코 작가이자 외교관 출신으로 이른바 ‘아이비 리그’ 대학들에서 라틴문학을 강의해온 카를로스 푸엔테스 (Carlos Fuentes)의 특강을 들었다. 강연 중 영어에 서투른 내가 분명히 알아듣고 지금까지 뚜렷이 기억하는 대목이 있다. “미국이 안에서는 지킬 박사 (Dr. Jekyll) 같은데 밖에서는 하이드 씨 (Mr. Hyde) 같고, 안에서는 민주주의지만 밖에서는 제국주의다”는 대목이다. 미국을 동경하며 미국에서 공부하던 나에겐 꽤 충격적 말이었다.
이후 미국에서 미국의 정부자료를 갖고 미국의 대외정책을 공부하며 미국의 호전성을 제대로 알게 됐다. 그래서 지금까지 글에서나 강연에서나 즐겨 써온 말이 있다. “이 세상에 미국처럼 호전적 (好戰的) 국가 없다. 미국처럼 전쟁 많이 해본 나라 없고, 좋아하는 나라 없으며, 잘하는 나라 없다. 전쟁을 통해 나라를 세웠고, 전쟁을 통해 영토를 확장했으며, 전쟁을 통해 초강대국이 되었고, 전쟁을 통해 세계패권을 유지해왔다. 1776년 독립 때부터 240년 넘도록 전쟁을 치르지 않은 기간은 20년도 되지 않는다. 전쟁을 통해 먹고 살아온 것이다.”
이러한 나의 주장을 확인해준 미국 대통령이 있다. 지미 카터 (Jimmy Carter)다. 미국의 시사 주간지 <뉴스위크 (Newsweek)> 2019년 4월 15일자에 보도된 내용을 소개한다. 미국과 중국이 수교를 시작한 지 40년이 지난 2019년 4월, 트럼프 (Donald Trump) 대통령이 1979년 1월 중국과 외교를 정상화했던 카터 전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었다. “중국이 우리를 앞서고 있다”며 급성장하는 중국 경제력이 두렵다고 조언을 구했다. 중국 경제가 2030년까지 미국을 따라잡을 것이며, 많은 전문가들이 말해왔듯 세계는 이미 “중국의 세기”에 살고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카터는 대략 다음과 같이 말했다. “중국의 무서운 성장은 현명한 투자에 의해 촉진되고 평화에 의해 활성화했다. 1979년 이후 중국은 단 한 번도 전쟁하지 않았다. 미국은 계속 전쟁을 치르고 있다. 미국은 242년 (1776-2018) 역사에서 오직 16년 동안만 평화를 즐기며 ‘세계 역사상 가장 호전적 국가 (the most warlike nation in the history of the world)’가 되었다. 다른 나라들에게 미국의 원칙을 따르라고 강요하는 경향 때문이다. 중국이 약 18,000마일 고속철도를 놓는 동안, 미국은 3조 달러를 군사비로 썼다. 중국은 단 1전도 전쟁에 허비하지 않았다. 그래서 중국이 거의 모든 면에서 미국을 앞서고 있다.”
미국의 전 대통령이 현 대통령에게 미국이 “세계 역사상 가장 호전적 국가”라고 말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세 가지 통계를 덧붙인다. 첫째,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식 이후 2024년까지 전 세계 150개 이상 지역에서 약 250개의 전쟁이 일어났는데, 이 가운데 200개 이상 전쟁에 미국이 개입했다. 참고로 20세기에만 약 1억 9천만 명이 전쟁으로 죽었다.
둘째, 미국은 2024년 현재 약 60개 국가에 800곳 안팎 군사기지를 운영하며, 약 170개 국가와 군사훈련을 실시한다. 미군은 일본과 한국 등 아시아에 거의 10만 명, 독일과 이탈리아 등 유럽에 6만 명 이상이 주둔하고 있다.
셋째, 미국은 2023년 9,055억 달러 (1,200조 원 이상)의 군비를 지출함으로써 전 세계 군비 2조 2천억 달러의 40% 이상을 차지했다. 2위 중국의 2,195억 달러보다 4배 이상 많고, 전쟁 중인 3위 러시아의 1,085억 달러보다 8배 이상 많다. 미국을 뺀 국방비 최대 지출국 15위 안에 든 나라들의 국방비를 모두 합친 것보다 많다.
2. 한미 군사동맹의 폐해와 위험성
군사동맹은 군사목적을 위해 조약을 맺어 공동으로 군사행동을 하자는 약속이다. 공동의 적이 필요하다. 한국과 미국의 공동의 적이 조선(북한)인가 중국인가? 조선과 중국은 1950년대 한국전쟁을 통해 한국과 미국의 적국이 됐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은 1979년 국교를 정상화했고, 한국과 조선은 1991년 평화와 통일을 위한 기본합의를 이루었다. 한국과 중국은 1992년 수교를 시작했다. 조선은 미국에겐 적이라도 한국에겐 평화와 통일의 대상으로 바뀌고, 중국은 미국에겐 경쟁국이지만 한국에겐 최대의 무역 상대국으로 변했다. 이에 따라 주한미군의 성격과 역할이 달라지고, 한국과 미국의 국익과 목표도 달라졌다.
주한미군은 본디 1953년 7월 한국전쟁 정전협정 직후 맺어진 한미 상호방위조약에 따라 북한의 남침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한국전쟁을 완전히 끝내지 못하고 일시적으로 멈추거나 잠시 쉬기로 한 상태에서 전쟁이 재개될 것에 대비해 미군이 머물러있기로 한 것이다. 냉전시대 미국의 반공정책으로 소련의 팽창과 공산주의 확장을 저지하고 봉쇄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정치, 경제, 군사, 외교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북한보다 크게 뒤떨어진 당시 남한에 더 필요했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되고 중국이 급성장하면서, 미국의 국가이익과 정책목표가 달라지고 주한미군과 한미 군사동맹의 성격과 역할도 바뀌었다. 명목적으로는 조선의 남침을 막는 것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급속하게 떠오르는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기 위한 것이다. 휴전선 근처의 미군기지들을 서해안 평택으로 옮기고, 중국의 미사일기지를 감시하기 위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THAAD, 싸드)를 한사코 성주에 배치한 배경이다.
이렇게 달라진 한반도 안팎의 안보 환경에서 주한미군과 한미 군사동맹이 한국에 지속적으로 필요하고 국익에 도움이 될까? 전혀 아니다. 주한미군과 한미 군사동맹은 조선의 침략을 막기 위한 한국의 안보이익이 아니라,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기 위한 미국의 안보이익을 위한 것으로 바뀌었다. 주한미군이 한반도 안에만 머무르지 않고 유연하게 밖으로도 나가겠다는 ‘전략적 유연성 (strategic flexibility)’을 내세우는 이유다. 미국 덕분에 전쟁을 피하는 게 아니라, 주한미군 때문에 전쟁에 휘말리게 되는 것이다. 남북관계에서도 미국의 간섭과 통제를 받느라 한반도 통일에 도움이 되는 게 아니라 방해가 된다. 2018년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한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개 그리고 철도 및 도로 연결은 물론 심지어 인도적 차원의 독감예방약 지원조차 막았다. 의약품을 싣고 갈 트럭이 전략물자라는 구실이었다.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는 게 아니라 남북관계 진전을 방해하며 갈등과 불안을 야기하는 것이다.
또한 해마다 수십 번 또는 대규모로 서너 번 열리는 한미 연합군사훈련은 조선의 극심한 반발과 한반도 긴장을 불러온다. 2020년대 한국의 군사력은 세계 5-7위, 국방비는 8-10위, GDP 대비 군비지출은 5위, 무기수출액은 10위, GDP는 10-14위 등으로 군사력과 경제력이 세계 최상위 5% 안팎에 속한다. 조선은 군사비를 미국의 1/100 또는 한국의 1/10보다 적게 쓰면서도 러시아나 중국 군대와 단 한 번도 연합훈련을 벌인 적이 없다. 미국의 핵 위협에 맞서며 한국에 대한 재래식 군사력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핵무기 개발이나 미사일 시험 같은 ‘도발’로 대응한다.
한국은 조선과 전쟁을 완전히 끝내고 화해와 협력을 통해 평화통일로 나아가야 하지만 미국은 초보적 종전선언조차 거부하며 평화협정을 반대한다. 한반도에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정착되면 주한미군을 유지하며 한미 군사동맹을 강화할 법적 명분이 약해지고 없어지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외정책 제1 목표인 중국 견제와 봉쇄를 위해서는 주한미군 유지와 한미 군사동맹 강화가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한반도에서 전쟁 종식과 비핵화를 거부해야 하는 것이다.
게다가 주한미군과 한미 군사동맹은 한국의 경제번영에도 큰 걸림돌이다. 중국이 1970년대 말부터 2010년대까지 연 평균 10% 정도의 급속적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며 미국에겐 패권 도전국이 됐지만 한국에겐 최대 무역상대국이 되었다. 한국과 중국의 교역량은 2004년부터 한미 교역량을 초과하고, 2009년부터는 한중 무역량이 한미 무역량의 두 배 이상 많아졌다. 한국의 전체 교역량 가운데 약 1/4을 중국이 차지하고, 전체 무역흑자 가운데 적어도 절반 이상을 중국에서 거두어왔다. 또한 2017년 주한미군의 싸드 배치 이전엔 한국방문 관광객의 절반 이상이 중국인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은 미국과의 군사동맹 때문에 중국을 적으로 만들고 있다.
주한미군과 비대칭적 한미 군사동맹의 가장 크고 심각한 폐해와 위험성은 한국이 미국의 전쟁에 개입하는 것이다. 앞에서 얘기했듯, 미국은 세계 역사상 가장 호전적 국가다. 한국이 이토록 호전적 미국과 군사동맹을 맺고 유지하며 강화하는 한 미국의 전쟁에 휘말리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은 미국과 군사동맹 때문에 이미 두 번이나 참전했다. 1960년대에 베트남 독립을 방해하고 통일을 반대하며 일으킨 미국의 침략전쟁을 세계 어느 나라보다 더 많은 병력을 보내 크게 도왔다. 2000년대엔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거세게 반대하고 비난했던 미국의 이라크 침략전쟁에도 뛰어들었다. 미국이 다른 나라의 공격을 받아서 도와준 게 아니라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 데 군대를 보낸 것이다. 2023년엔 미국의 나토 확장.동진 정책이 촉발한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에 한국이 모든 유럽 국가들이 합친 것보다 더 많은 포탄을 우크라이나에 제공함으로써 러시아의 적이 되고 있다.
앞으로는 한국이 대만을 둘러싼 미국-중국 전쟁에 휘말리기 쉽다. 대만해협과 동중국해 등에서 중국을 봉쇄하기 위한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이를 무력화하기 위한 중국의 ‘접근반대 및 지역거부’ 전략이 충돌하면 전쟁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19세기 청일전쟁과 20세기 러일전쟁에 이어 21세기 미중전쟁에서도 한반도는 전쟁터가 될 수밖에 없다.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는 미국군대의 가장 크고 가장 가까운 해외기지가 평택에 있고, 중국을 감시하며 겨냥하는 미군의 가장 가까운 미사일방어체계가 성주에 설치되어 있어서, 중국이 한국을 폭격 지역과 대상으로 삼을 게 뻔하다. 주한미군과 한미동맹 때문에 한국이 자동적으로 전쟁에 휘말리게 되리라는 말이다. 우리가 주한미군을 될수록 빨리 내보내고 한미동맹에서 벗어나야 할 이유다.
3. 중립의 의미와 조건 그리고 한국 중립화의 필요성
중립은 전쟁 관련 용어다. 전쟁에서 나온 말이다. “전쟁에 개입하지 않는 것”이다. 국어사전에도 나와 있듯, “국가 사이의 분쟁이나 전쟁에 관여하지 아니하고 중간 입장을 지키는 것”을 의미한다.
전쟁이 일어날 때만 어느 쪽에도 편들지 않고 중간에 서서 개입하지 않는 게 아니라 평상시에도 다른 나라와 군사 교류를 하지 않으며 군사 문제에서는 ‘항상’ 중간 입장을 지키는 게 ‘영구(永久)중립’ 또는 ‘영세(永世)중립’이다. 국어사전에 따르면, “나라가 전쟁이나 군사 동맹에 관여하지 아니함으로써 국제법상 독립 유지와 영토 보전을 보장받는 것”이다. 대표적 국가로 스위스와 오스트리아를 꼽을 수 있다.
이에 따라 중립의 조건은 “전쟁에 참여하거나 지원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전쟁하는 나라에게 어떠한 편의도 제공하지 않는 것”이다. 당연히 “다른 나라에게 군사기지나 군사물자를 제공하지 않으며, 어느 국가와도 연합 군사훈련을 하거나 군사동맹을 맺지 않는 것”이다. 물론 전쟁을 비롯한 군사 문제 이외의 경제, 사회, 문화 등의 분야에서 다른 나라들과 활발하게 교류하는 것은 중립에 어긋나지 않는다.
영구중립이 보장된 상태에서도 주변 강대국이 협정이나 조약을 파기하고 침략할 가능성이 있기에 무장 중립이 바람직할 수 있다. 거꾸로 영구중립을 보장받은 나라가 언젠가는 상황에 따라 국익을 위해 포기할 수도 있다. 주변 강대국들을 비롯한 국제사회와의 협정이나 조약을 바꾸거나 일방적으로 파기하면 된다. 국제관계에서 국익보다 중요한 것은 없고, 이 세상에 변치 않는 영원한 것은 없다.
2020년대 한국은 과거 1950-60년대처럼 고래 사이의 새우가 아니다. 앞에서도 얘기했듯, 세계 약 200개 나라 가운데 경제력은 12위 안팎, 군사력은 6위 안팎, 기술력과 문화력은 최고수준으로, 종합 국력이 10위 정도의 최상위 5% 안에 드는 강소국 또는 중견국이다. 미국에 대한 군사적 의존과 종속에서 벗어나 전쟁을 피하며 경제 번영을 이룰 수 있는 중립화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갖춘 나라다.
그렇다고 미국을 반대하며 적으로 삼자는 건 아니다. 미국이든 중국이든 조선이든 친구로 삼는 게 바람직하고 그럴 수 있으며 그래야 한다. 한국이 미국과 군사동맹을 유지하고 강화하면 미국과 더 가까워지되 조선, 중국, 러시아 등을 적으로 만들며 전쟁에 휘말리기 쉽지만, 불평등하고 비대칭적인 군사동맹을 해체하면 어느 나라든 적으로 만들지 않고 친구로 삼으며 평화롭게 지낼 수 있다. 중립화를 이루어야 할 절박하고 절실한 이유다.
이재봉 교수 약력
약력:
하와이대학교 정치학 박사
원광대학교 정치외교학·평화학 명예교수
남이랑북이랑 더불어 살기 위한 통일운동 대표
대표 저.편.역서:
『평화적 수단에 의한 평화』
Korea: The Twisting Roads to Unification
『이재봉의 법정증언』
『문학과 예술 속의 반미』
『평화의 길, 통일의 꿈』
『통일대담: 역사.문학.예술 전문가에게 듣는 평화와 통일』
『한반도 중립화: 평화와 통일의 지름길』
수상:
2019년 한겨레통일문화상
* 이 글은 2024년 7.27 평택미군기지 국제평화행동을 앞두고, 한국중립화추진 시민연대가 2024년 7월 19일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가진 제1차 시민공개토론회에서 발표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출처 : 통일뉴스(http://www.tongil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