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립화 용어의 개념, 조건, 대상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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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4-07-25 16:44 조회22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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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립화 용어의 개념, 조건, 대상 국가
강종일/한국중립화추진시민연대 자문위원
1. 영세중립 관련 용어의 정의
(1) 중립(中立): 중립은 주로 전쟁 역사와 함께 사용되기 시작했다. 전쟁 발생 시 제3국은 전쟁 당사국의 어느 편에도 가담하지 않고, 무력을 지원하지 않으며, 편의를 제공하지 행위를 말한다. 이사야(Isaiah)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아시리아와 이집트의 전쟁에 어느 쪽에도 가담하지 말고 중립을 지킨다면 영원한 평화를 누릴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오늘날 냉전 체제하에서 전시와 평시를 엄격히 구분하기 어렵게 됨에 따라 오직 국제적 분쟁에 개입하지 않은 행위를 중립으로 해석한다.
(2) 영세중립: 영세중립은 중립화와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Cyril Black). 영세중립은 국가에 한해 사용하나 중립화는 국가를 포함해 국제영토(캐시미르), 국제수로, 국제하천, 남극과 북극 같은 곳에도 사용된다. 영세중립(또는 중립화)의 정의는 그 국가의 정치적 독립과 영토의 통합을 주변 강대국들과 집단적 협정을 통해 영구적으로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를 말한다.
2. 영세중립의 조건과 대상 국가
(1) 영세중립의 조건: 주관적 조건(영세중립을 하려는 국민들의 의지), 객관적 조건(지정학이 영세중립에 해당된 국가), 국제적 조건(주변국과 협정을 체결)
(2) 영세중립의 대상국가: 신생독립국가, 역사적으로 외국의 침략을 많이 받은 국가, 강대국에 포위되어 있는 국가, 강대국 간의 교량적 역할을 하는 국가, 앞으로 외국의 침략을 받을 가능성이 있는 국가.
3. 한반도는 왜 영세중립을 해야 하는가?
한 국가의 안보를 위해서는 집단안전보장체제, 자립, 동맹, 영세중립 방법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1) 집단안보체제: 여러 국가들이 힘을 모아 외부의 침략을 방어하는 집단적 동맹이다. 대표적 집단안전보장체제는 유럽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이다. 한반도의 영세중립을 위해 동북아시아조약기구(NATO: Northeast Asia Treaty Organization)를 생각할 수 있다. 이 기구에 참가할 국가들은 남북과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이다. 동북아 NATO의 구성이 가능 한가? 동북아 NATO 구성이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집단안보체제는 지역을 중심으로 한 국가들이 구성해야 하는데 미국은 멀리 떨어진 국가로 중국이 장차 패권국가의 야심이 있어 미국의 가입을 반대할 것이고, 수백 년 동안 대립해온 해양국가와 대륙국가 간에 안보기구를 만드는 것 자체가 어려운 문제이다. 한반도는 대륙국가와 해양국가 간의 교량적 역할을 하고 있어 어느 한편에 가담 할 경우 다른 국가들의 국가이익에 손해를 입게 된다. 특히 미국과 중국, 일본과 중국, 미국과 러시아는 현재 다방면에서 경쟁 국가들이기 때문에 동북아 집단안보동맹이 어려운 문제가 될 것이다.
(2) 자립(自立): 자립은 이상적인 안보 방안이다. 한반도가 통일이 되더라도 주변의 4대 국가들과 국력을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국력이 미약하다. 남북의 통일된 국력과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 5개국의 국력을 100으로 했을 경우, 한반도가 차지하는 국력의 비율은 국민총생산(GDP) 3.0%, 군사비 3.7%, 인구 3.7%, 국토 0.6%(문수언 외, 1998: 98)이다. 한반도의 이러한 국력은 상대적으로 한국이 부강하게 되면 다른 국가들은 더 부강하게 됨으로 한반도 안보의 자립방안은 어려울 것으로 분석된다.
(3) 동맹: 현재 한국은 미국과 안보동맹을 유지하고 있고, 북한은 중국과 동맹을 맺고 있다. 동맹은 약소국의 안보는 유지될 수 있으나 약소국은 강대국의 내정간섭을 받게 된다. 역사적 사례를 들어 보자. 근세조선 주재 미국의 루시어스 푸트(Lucius H. Foote) 특명전권공사가 1884년 7월 7일 미국에 가한 중국의 압력으로 총영사로 강등되었고, 조선의 조신희(趙臣熙) 구주특명전권공사가 1887년 9월 16일 부임도중 상해에서 중국의 저지를 받았으며, 박정양(朴定陽) 주미특명전권공사가 동년 9월 23일 부임길에 남대문에서 유안시카이(遠世凱) 군대의 저지를 받았다. 최근에는 남북철도공동조사단이 2018년 8월 30일 북한으로 가려다 유엔사령부의 제지로 연기되었다.
(4) 영세중립: 장차 통일된 한반도가 안보유지를 위해서는 영세중립 방안이 어느 방안보다 합리적이고 타당성이 높을 것으로 전망된다.
4. 고종의 영세중립 정책
- 고종(高宗)은 1891년 6월부터 영세중립 정책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는 1900년 8월 29일 조병식(趙秉式) 특사를 일본에 보내 고헤이 도구마(近衛篤磨)에게 조선의 영세중립 정책의 협력을 요청했으나, 고헤이는 “조선의 중립화 준비가 부족함으로 조선의 외치는 일본에 맡기고, 조선은 내치에 충실할 것”을 요구하면서 협력을 거절했다.
- 고종은 1901년 1월 일본주재 러시아 공사 이스볼스키(Alexander P. Isvolski)를 통해 일본정부에 조선의 중립화방안을 다시 제의했으나 일본은 이를 거절했다.
- 고종은 1903년 9월 조선의 조병식 특사를 통해 주일 미국공사 버크(Alfred E. Buck)에게 조선의 영세중립 방안을 제출하고 협조를 요구했으나, 버크는 사안의 중대함을 이유로, 조선이 워싱턴에 직접 제출하라고 접수를 거절했다.
- 고종은 1904년 1월 20일 일방적으로 “조선은 영세중립국이다”라고 선포했으나 일본이 그해 2월 10일 러일전쟁을 일으킴으로써 고종의 영세중립 정책은 실패하게 되었다.
5. 영세중립 국가들
(1) 스위스: 스위스는 1515년부터 영세중립 정책을 추진했으며, 1815년 3월 20 나폴레옹 전쟁을 종결하는 비엔나(Vienna)회의에서 연합국가 들은 스위스의 영세중립이 유럽의 전체적 이해관계에 필수적임을 인식하고 이를 보장하기로 합의했다. 유럽 8개 연합국은 1815년 11월 20일 파리선언에서 스위스의 영세중립을 승인함으로써 세계 최초의 영세중립국이 되었다.
(2) 오스트리아: 히틀러 편에서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이 된 오스트리아는 소련이 추천한 사회주의자 칼 레너(Karl Renner)가 1946년 6월 수상이 되었다. 레너 수상은 처음부터 오스트리아에 주둔한 4개국(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 군대의 명예로운 철군을 위해 영세중립 정책을 표방하였다. 영세중립 문제를 최초로 언급한 대표는 소련외상 몰로토프(Vyacheslav M. Molotov) 로 조약을 통한 오스트리아의 영세중립의 필요성을 처음으로 제기했다. ?